지아장커 : 통념을 전복시키는 형식적 실험의 대가 (24시티, 무용, 동)
19살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지아장커의 스틸라이프와 천주정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화 보는 내내 졸았고, 그가 왜 거장 감독으로 칭송받는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죠.
그런데 어렵고 불친절하기만 했던 그의 작품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다큐멘터리 감독 중 지아장커를 제일 좋아하게 되었고, 그의 작품은 볼 때마다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특히 그의 다큐멘터리의 형식적 실험은 우리의 통념을 전복시켜 새로운 시야를 갖게 해줍니다.
오늘은 그의 작품 중 24시티, 무용, 동에 관한 감상을 휘발되기 전에 한번 적어보도록 할게요.

<24시티>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진정성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진심이 오고 가는 순간이 드물고, 영화의 절정에서 보여지는 그 순간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현실을 재현해 놓은 영화에서 되려 현실에서 보기힘든 진정성이라는 요소가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졌고, 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참 모호하고도 신비로웠습니다.
<24시티>는 그러한 포인트에서 아주 놀랍도록 잘 만들어진 페이크 다큐멘터리입니다.

우리는 다큐멘터리에서 온전한 진실을 기대합니다.
사실 이것은 감독에 의해서 가공되고 재구성된 하나의 기록일 뿐입니다.
현실이라는 것 조차 수용하는 대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기에, 이 세상은 무엇도 진실이라고 확언할 수가 없습니다.
이 점에서, 제가 상당히 놀랐던 것은 다큐멘터리의 8명의 진술 속에 가상 인물의 연기가 섞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진짜와 가짜의 경계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 8명 중에 무엇이 가짜인지에 대한 진위여부보다 되려 진짜라고 일컬어지는 8명의 현존 인물의 진술의 진정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우리가 굳게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과연 진실된 것인지,
특히 제가 영화라는 매체에 갖고 있는 통념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전복시키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실에 대한 모호함이라는 메시지가 다큐멘터리의 형식적 실험으로 이어진데 몹시 소름이 돋았네요.

두 번째는 <24시티>는 다큐멘터리가 역사가 아닌 기록의 수단이라는 것을 무척 잘 구성했다는 것인데요.
역사는 객관적으로 과거를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면, 기록은 과거 그 당시의 질감, 온기,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4시티>는 하나의 공간을 4차원으로 담아낸 상당히 입체적인 기록입니다.
공간에는 지나간 혹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존재하고, 그 시간동안 존재한 인물들, 인물들이 겪은 사건들, 사건들로 인해 만들어진 삶이 존재하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경험을 너머 다른 차원으로 이동되는 초현실적인 힘이 발현된다고 생각해요.

<24시티>는 그러한 하나의 공간을 필두로 8명의 제각기 다른 삶을 모아 보여줍니다.
그는 군수공장이라는 공간을 호출해 재개발의 시간을 매개로 소외되고 애환이 담긴 삶의 얼굴들을 바라봅니다.
일반적인 다큐멘터리라면 철거의 과정에 포커스를 두었겠지만, 그는 개발의 뒷골목 속에 있었던 사람 이야기를 합니다.
마지막에는 텅 빈 공간에 부대끼는 먼지와 잿빛 콘크리트만 봐도 그들의 처절한 삶이 그려져 가슴이 먹먹해지기만 하는데요.
저는 무심하지만 섬세한 그의 시각을 통해, 그 공간에서 그 당시 인물과 삶이 제 삶으로 걸어오는 듯한 기이한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분명히 현실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픽션으로 간극을 메운 것까지 초현실적이고 공감각적인 체험은 다시 봐도 인상적입니다.

<무용>
옷에서 과도한 의미를 추구하는 패션디자이너와 생존에 급급한 시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병치된 구조가 너무 이질적이다 보니 꽤 충격적이었는데요.
무용을 이끄는 디자이너는 극도로 노동이 집약된 중국 산업계에 반발하여 일회성에 그치는 옷이 아닌, 자신의 옷에서 의미를 찾길 바랍니다.
그녀는 의미를 추구하면 옷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옷을 떠나 삶의 의미조차 발견할 수 없는 각박한 삶만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잊혀진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속세와 떨어진 원초적인 그들의 삶을 관찰하러 가는데요.
과연 부르주아인 디자이너는 궁극적으로 옷을 통해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고자 했으나, 그 의미란 그저 디자이너 자의식 충족에만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디자이너인 저 또한, 현실과 동떨어져 있고, 패션이라는 필드에만 괴리되어있는, 계급적이고 현학적인 접근을 상당히 경계하려고 합니다.
디자이너인 저에게만 '좋은 옷'은 아닌지, 자기 위안적인 의미 부여가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수 있는 '좋은 옷'인지 충분히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
역시 <동>도 <무용>과 같은 맥락으로 이어집니다.
다큐 속의 화가는 현실의 편린들을 모아 자신의 작품세계에 맞게 재연출하여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그가 그려내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자의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그려낸 현실의 피사체들은 그의 취향에 맞게 조작되고 가공된 것이라고 봐야겠죠.
그러므로 피사체들의 진짜 삶은 그가 바라본 세상과 상당히 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그는 세상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이 아닌, 세상의 일차원적인 표면만 그려낼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그를 바라보는 시각에 불과하기에,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개인에 따라 충분히 다층적일 수 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과연 슬프고 안타까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하는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 비참할수록 우리는 아름다운 현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더군요.
그 화가는 후자의 경우에 가까웠지만, 예술가들을 비롯해서 우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만큼은 세상을 하나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네요.
오늘은 가장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지아장커의 24시티, 무용, 동에 관한 감상을 적어보았습니다.
처음 쓰는 영화리뷰를 지아장커로 장식할 수 있어서 더 애틋하게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그의 영화를 볼 때면 고정관념에 탈피해 새로운 생각의 지평이 열리게 되는데, 3회차 감상하는 지금도 여러 가지 생각을 곱씹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사담 하나 하자면, 사실 저는 오래전에 네이버 블로그 활동을 활발히 했던 블로거였는데요.
과거에는 대부분이 글이 사적인 일기와 생각 배설이 주였습니다.
지금의 티스토리 블로그는 저를 덜어내는 대신 청자를 의식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취지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는데요.
이러한 저의 감상적인 리뷰가 계속되는 걸 보니, 계획된 블로그 성격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꾸만 드네요.
정보 글보다 이러한 리뷰가 더 제 성향에 맞기도 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써야 할까요?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로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개인적인 기록의 용도와 구글 애드센스 수익 창출 둘다 만족하기 위해 이 공간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고민이 많네요.
그래도 블로그를 운영한지 보름밖에 안됐는데 몇몇 독자 분들이 생겨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비가 많이 오는데 출근길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