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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하동/남원-3] 이야기가 있는 풍경 (삼성궁, 지리산허브밸리, 광한루)

PAHLO 2024. 7. 8. 13:58

구례/하동/남원 여행 3편은 삼성궁, 지리산허브밸리, 광한루에 관해서 적어보겠습니다. 
이 세 곳은 물과 바람, 시간이 빚어낸 풍경에 그 안에 담겨있는 이야기가 있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는데요.
삼성궁에서는 우리나라 대대로 이어지는 조상들의 영혼과 광한루에서는 설화에서 소설까지 오랜 시간 그 명맥을 잇는 춘향전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의미가 깊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계보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곳이기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나들이하기에 추천해 드리는 곳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꼽자면 하동의 삼성궁이었습니다.
삼성궁은 하동 읍내에서도 한참 동안 들어가 굽이굽이 진 산길을 1시간가량 따라 올라가면 지리산 꼭대기에 위치해있는 곳입니다.
삼성궁 초입 저수지 사진만 보고 기대 없이 방문한 곳이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고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어서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하동을 들리신다면 꼭 방문해야 할 비밀스러운 별천지 같은 곳입니다.
아, 저희는 삼성궁 한 바퀴를 돌아보는데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됐습니다. 힘들지 않은 코스이나 많이 걸어야되니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운동화를 신기 바랍니다.


 삼성궁은 돌담으로 쌓인 거대한 성인데, 환인, 환웅, 단군을 비롯해 역대 우리나라의 역대 임금과 현인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는 성스러운 순례 참배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성궁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지리산의 정기를 흠뻑 받은 듯 상당히 신성하고 경건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신념이 만들어낸 거대한 스케일의 공간을 다녀오면,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위 자체가 참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제가 인지하고 있는 범주 밖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 것인지 깨달음을 얻으면서 초자연적인 존재 앞에 스스로 겸손해지게 되네요.


삼성궁은 걸어가는 순간마다 풍경이 변하는 한국식 정원의 매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의도적으로 우회한 시퀀스와 굽이진 길들을 걷다 보면 겹겹이 쌓인 삼성궁의 내막이 하나하나 벗겨지게 됩니다. 
가는 길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도 새롭지만 같은 곳에서도 보는 시야에 따라 변하는 풍경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거대한 스케일의 무덤과 고인돌과 같이 괴어놓은 바위들, 산꼭대기에 자리 잡은 곳곳의 저수지는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와 다른 이색적인 느낌을 받게 합니다.
종교적인 힘으로 인간과 세속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풍경이 상당히 압도적이네요.  
알 수 없는 부호, 의미심장한 얼굴이 있는 제단이 그 신비로움을 더해줍니다.


산꼭대기에 돌 하나하나를 쌓아 거대한 궁전을 만든 노고도 참 놀라운데요.
저는 이러한 궁전을 설계하고 총괄하기 위해 몇 대에 걸쳐서 내려왔을 족보가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 과정과 기록을 삼성궁 한 켠에 전시하는 공간이 있었더라면 그 감동이 더욱 배가되지 않았을까 싶은 바람입니다.


저녁은 남원에 있는 솥밥 선생님에서 흑돼지 제육 쌈밥 정식과 고등어구이를 추가 주문하여 먹었습니다.
계속된 식사 실패로 미리 알아둔 곳보다 즉흥적으로 손님이 많은 곳에서 식사하자는 부모님의 의견이었는데요.
아침, 점심을 부실하게 먹고 빡센 일정 탓에 아주 맛있는 한 끼 식사였네요.
에피타이저로 주는 미역국이 맑고 시원해서 시작부터 좋은 느낌이었습니다.
깔끔하고 정갈한 차림과 주메뉴였던 흑돼지 제육도 은근 양이 많아서 전부 다 먹지 못했지만요.
쌈도 다양한 종류가 있어 향긋한 이파리에 달큰한 제육을 싸 먹으니 속이 아주 든든했습니다.
고등어구이도 비린내 없이 살이 연하고 부드러워 맛있었고, 솥밥의 숭늉까지 아주 정성스럽고 푸짐한 식사였는데, 왜인지 모르게 평점이 낮더군요.
남원 여행에 믿고 방문하셔도 좋겠습니다.

숙소는 남원의 오헤브데이호텔에서 묵었습니다.
호텔 가는 길이 외지고 아주 어두워서 제대로 온 것이 맞나 싶었지만, 3성급치고는 아주 쾌적하고 조용히 쉬다 갈 수 있었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사진은 못 찍었는데요.
부모님께서 숙박업을 하셔서 객실 청결에 많이 예민하신 편인데도, 전체적으로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침구류도 포근하고 매트리스도 좋은 걸 쓰는지 덕분에 잠도 깊게 잘 수 있었고요.
저희는 잠만 잘 거라 그 외에 부가적인 것을 원하는 건 아니어서,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시설이었습니다.


입실 때 어두컴컴했던 길이 해가 밝아오니까 산속에 둘러싸여 있더군요.
호텔 바로 앞에는 지리산허브밸리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방문한 곳이었는데, 꽤 넓은 규모로 식물원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실내 식물원에는 온열대 식물들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식물들이 있어 눈이 새로웠습니다.
쭉쭉 뻗은 가지와 군락을 형성하고 있는 식물들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는데, 요새 무기력했던 삶에서 의지가 솟아올랐습니다.
저는 너무 푸르른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그 뿜어내는 아찔함에서 감동을 느끼게 돼요.
식물도 식물이지만, 특이한 건 중간중간에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조성되어 있어, 자연과 하나 되어 힐링할 수 있는 식물원의 제 역할을 잘 구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야외 식물원에는 부지가 넓어서 전망대까지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셔야 합니다.
시간이 없으신 분들은 야외식물원 초입까지만 가셔도 볼거리는 풍성하겠습니다.
야외에는 아기자기한 꽃 정원이 가꾸어져 있었는데, 흐린 날씨에도 활짝 피어있는 꽃의 한결같음이 좋았습니다.
또 마침 수국 철이라 오밀조밀 모여있는 수국이 참 아름다웠고 여름의 시작을 실감케 해서 반가웠네요. 
내려가는 길 가로수의 푸릇푸릇한 싱그러움에 한참을 고개를 올려다보았는데, 여러모로 좋은 아침 산책이었습니다.
봄에는 벚꽃과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또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니 사계절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곳 아닐까 싶습니다.


점심은 남원 시내 중심에 위치한 광한루 근방 3대 원조할매추어탕에서 먹었습니다.
저는 사실 추어탕이 처음인데, 추어탕집에 들어가자 담배냄새가 올라와 의아했지만 알고보니 추어탕 냄새였습니다.
칼칼하고 스모키한 냄새에 금새 적응돼서 맛있게 먹고 왔습니다. 
특히 액기스만 뽑아낸 깊고 진득한 국물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완전히 갈아내서인지 염려했던 씹히는 식감도 없었고, 그 위에 계피가루를 솔솔 뿌려 먹으니 더 구수한 맛이 살아났습니다.  
우거지도 속을 편안하게 만들어줬고 진한 해장국을 먹은 듯 개운하고 후련한 한끼였네요.
그 매력을 잊을 수가 없어 이번 초복 때도 보양식으로 닭대신 추어탕을 먹어볼까 생각중입니다.


다음은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한 광한루입니다.
제일 눈에 들어온 것은 곳곳에 몇백년은 되어 보이는 듯한 울창한 고목들이었습니다.
마을에 한 그루 정도 보호수로 지정되었을 법한 나무들이 굉장히 많아 좀 놀랐습니다.
이 터를 지켜오면서 오랜 조선의 역사와 함께 호흡해 왔을 고목 눈에는 지금의 우리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요. 

저수지 위의 고즈넉한 광한루 누각과 금방이라도 물에 닿을 듯 늘어진 나뭇잎이 참 장관이었습니다.
오랜 시간과 자연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한참을 보고 있으니, 왜 이곳에 춘향과 이몽룡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이라면 지나가는 행인마저도 처절한 러브 스토리 하나쯤 만들기 좋은 곳인 것 같은데 말이죠.
연못의 잉어들에게 밥을 주었는데 너무 쏜살같이 달려와 금새 해치우는 모습이 조금 징그러웠습니다.
하지만 형형색색의 잉어들이 떼를 짓는 모습이 신기하긴 하더군요.


견우와 직녀가 만났다던 오작교입니다. 오작교를 바라보며 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로웠습니다.
고즈넉하며 호젓한 광한루 특유의 분위기에 취해 저 또한 안락함을 느껴봅니다.
이러한 잠깐의 평화가 일상의 번잡함을 잊게 해주는데, 돌아가서도 이러한 광한루의 평화로움을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려 합니다.
 
 

이번 1박 2일 하동/구례/남원 여행은 여기까지입니다. 생각만 했던 것을 이렇게 기록으로 옮겨적으니 더 애틋하게 느껴지네요.
그 때는 지나쳤던 것들을 기록하면서 다시금 떠올려 볼 수 있기도 하고, 무언가를 회상한다는 것 자체가 살짝은 미화되기도 하지만 그 감상이 더 풍부해지는 것 같습니다.
쓰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져 3편에 나눠서 적었지만, 이러한 기록이 저뿐만 아니라 하동/구례/남원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께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